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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가 친일지도?

2007/12/07 22:16 불멸의 사학도 씀.
분류 : 역사의 조각
꼬릿말 : 고액권 보조소재, 대동여지도, 영토개념, 친일논란

고액권 보조소재도 '친일논란'

    이 기사에서나 여기에 달려있는 댓글이나 거기에 달린 한줄 댓글들을 보면, 지폐 도안에 포함될 대동여지도를 친일적인 소재라고 해서 제외해야 한다고 하는데, 조선의 영토인 간도를 포함하지 않았고, 따라서 일제의 구미에 맞아서 총독부의 직인까지 찍혀서 인쇄된 지도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분명히 지도만 보자면, 간도를 영토로 표기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그게 마음에 들어서 조선총독부가 보급을 했을 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곧 이 지도가 간도 영유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백두산 정계비(해석의 여지가 있지만)에 토문강을 경계로 영토를 나누게 되어있으므로, 그 동쪽의 간도가 조선의 영토가 되는 것이고, 실제로 간도 땅에 많은 조선인이 이주하여 살고 있었고, 만주족이 모두 관내(關內, 중국 본토)로 들어가버린 상태에서 백두산 정계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땅의 실제 주인은 조선인 셈입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에서 우리가 만든 지도에서 간도를 포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일단 만주지역을 근거지로 하고 있는 청이 간도를 포함한 공적인 지도의 간행을 허가했을리 만무합니다. 어쨌든 그 지도를 인정한다는 것은 백두산 정계비의 비문을 사실로 인정하는 셈이고, 이것은 곧 만주지역 내에 다른 민족의 이주를 금지하는 봉금령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를 들자면, 그때와 지금의 영토개념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우리들은 누구든지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보아 정통의 맥을 신라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신라의(남쪽에 국한된) 삼국 통일 이후 이를 계승한 고려에 의해(이름은 비록 고구려를 계승했지만) 끝임없이 북진정책을 추구했지만, 여전히 조선왕조가 성립될 때만 하더라도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는 영토에 갓 편입된 곳으로, 고려시대에 이 지역 사람들은 많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종때에 와서야 비로소 압록강-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영토가 확정이 되었습니다. 이후 조선의 혼란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봉금정책을 무시하고 만주로 넘어갔고, 이곳이 사실상 조선인의 땅이 되었지만, 여전히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 영토라고 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것 보다도 이 지역 출신이 본토로 내려와서 과거시험을 본들 합격이나 시켜줬을지 의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을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지금이야 으레 역사부도 같은 곳에서 한 왕조의 영토를 표시할 때 원정을 통해 복속시킨 최대판도를 그려넣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통적인 경계는 중원을 중심으로 하는 장성 이남의 9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을 이어받은 중화민국을 몰아낸 중공이 이를 '재정복'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서양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영토란 실효적인 지배가 미치는 곳1이었고, 각종 조약에 따라 영토가 수시로 변하였기 때문에, 간도를 조선의 영토로 포함시킨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동여지도에서 간도를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해서 이 지도가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다든지, 친일행각을 했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는 것은 이 지도를 만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조선이 간도에 감찰사나 병마사를 파견하여 완벽하게 통치를 하지 않은 점이나, 대마도를 소(宗)씨집안의 자치 하에 맡긴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책봉체제 속에서 평화가 보장된 상황에서 얻는다고 한들 아무 이득도 없는 황량한 간도2나, 산악지형이 97%나 되는 대마도를 지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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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애초에 서양사람들은 아무데나 들어가서 몰아내고 깃발 꽂으면 자신의 영토가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Back]
  2. 만주족이 모두 내려가버린 뒤에 황무지로 버려진 곳을 개간하기 시작한 것은 간도로 이주한 조선인들이었습니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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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동여지도가 친일지도? (댓글 6개 / 트랙백 1개) 2007/12/07
낚엮인글 1 댓글 6
낚엮인글 주소 >> http://bulmyeol.net/trackback/160
  1. 일제에 의해 빼앗긴 땅, 간도(間島)는 어디인가?

    Web2.0과 인터넷지도에서 낚엮인글 2008/06/06 00:20  delete
    얼마전, 구글어스에 럼지 고지도 콜렉션이 갱신되었다는 뉴스를 올리면서 우리나라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동해를 어떻게 표기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더니, 동해가 표기된 4개의 지도 중에서 유감스럽게도 단 1개만 한국만(Gulf of Corea)라고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지도들을 보다가... 우연히 간도지방을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저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경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래가 그 지도들..
  1. Laputian  2007/12/09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친일 지도라고 하는 것에도 억지가 없진 않더군요. 지금은 뭐 어떤게 사실이고 거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만 신경쓰이는 것 하나는 조선총독부 직인.
    • 불멸의 사학도  2007/12/11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 총독부의 통치에 영합할 목적으로 만든 지도가 아니니 친일이라는 용어는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만들어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서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는 것이고, 지적조사가 모두 끝나서 상세한 지도를 작성할 수 있을 때까지 대동여지도가 사용된 것으로 봐야겠네요... 어차피 토지조사는 일제 초기에 다 끝났으니 대동여지도가 더럽혀진 시기도 그리 길다고 볼 순 없겠네요...(그때 작성해놓은 지적도가 얼마 전까지 사용되지 않았나요? 지금이야 GIS사업으로 어느 정도 다시 작성하긴 했지만요...)
  2. X_Guard-ST  2008/04/25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기상으로 맞지 않는 대동여지도가 친일지도라는건

    어디서 나온 새로운 사업인가요 ㅇㅅㅇ?
    • 불멸의 사학도  2008/04/25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재 남아있는 대동여지도 인쇄본에 총독부 직인이 찍혀있어서 그렇게 보는 것이라던데요...

      하지만 위에도 적었지만, 일제 초기에는 대대적인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되지 못했고, 당연히 국토 측량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상세한 지도는 아직 마련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일반 대중에게 보급할 목적으로 대동여지도의 가치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고, 그래서 아마 총독부의 허가 하에 인쇄가 계속 되었던 게겠죠...

      물론 대동여지도 친일소재론에 동의하는 분들은 이 지도가 간도영유권을 표시하지 않아서 총독부의 허가를 받은 것이라고 하는데, 일본 입장에선 어차피 만주도 자신들의 영향권이고, 조만간 꿀꺽할 예정인데, 간도 영유권따위 조선에 있든 청에 있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테죠... 그런데 그게 없다고 친일이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3. 푸른하늘  2008/06/06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대동여지도에 총독부 직인이 찍혀있었다...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관계없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트랙백 하나 남깁니다.
    • 불멸의 사학도  2008/06/06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대동여지도가 서양식 제작기법이 도입되기 전에 만들어진 지도 치고는 상당히 정밀했기 때문에 총독부의 허가 하에 계속 사용을 허가해줬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극도로 정밀한 서양식 지도는 독립군이나 다른 적들에게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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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사학도는 이렇게 말했다.

"이룰 수만 있다면 뭐라도 믿고 싶어요."

우리 슬픈 종부세를 구해주세요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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