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어째서 건군 60주년이죠?
올해는 광복 63주년인 광복절 행사를 건국 60주년 행사로 둔갑시켜 요란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건군 60주년 기념으로 도심에서 퍼레이드까지 벌이며 난리를 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naked 의석'이 되어버린 관계로 '건군 60주년'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건군이란 용어는 건국이란 용어만큼이나 국가 정통성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데, 이를 지적할 만한 분들이 강의석 씨의 누드 퍼포먼스에 적잖은 충격을 받으셔서 미처 신경쓰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문제와 관련된 짧은 기고문을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북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北韓』이라고 하는 회지에 실린 「광복군의 법통을 계승한 우리 국군」이라는 글로, 공군 예비역 준장이자 성우회 안보평론위원인 이상준씨가 썼습니다. 다른 논문을 찾아봐도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군 내부에서도 같은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이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대한민국 국군의 군맥이 19세기 말 의병-독립군-광복군-국군으로 이어져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제국군이 해산된 1907년부터 광복군이 창설된 1940년까지의 역사를 단절된 것으로 보는 '국군단절론'이 민족사의 단절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이 시기의 33년사를 그 전후 시기와 연결된 시기로 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광복군 성립 보고서'를 들고 있습니다.
'광복군 성립 보고서'는 1940년에 광복군 총사령부가 발표한 보고서로, 광복군의 창립 시기를 일제가 대한제국군을 해산시켜 제1대대장 박승환이 권총자결하고, 이에 따라 정규군이 정미의병에 가담한 때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광복군의 창설일인 8월 4일이 박승환이 자결한 8월 1일과 같은 시기라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결국 광복군 성립 보고서에서 광복군이 창립 이전의 군사활동(의병, 독립군 활동)과 단절되지 않고, 이를 계승했음을 천명했습니다.
여기에 "의병이란 민군이다. 국가가 위급할 때 즉시 의로써 일어나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종군하여 싸우는 자 인 것이다."라고 하신 박은식 선생의 말씀이나, 황현과 같이 의병전쟁을 독립전쟁의 원류로 본 사람들의 예를 들어 의병이 단순히 충군사상이나 배일감정에서 비롯된 군대가 아니라 자발적인 국민군의 성격을 띠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병의 창설이 제 1의 창설이라고 보고, 독립군의 창설이 제 2의 창설, 광복군 창설이 제 3의 창설,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이 제 4의 창설이고, 이 시기에 끊어지지 않은 군맥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 시기를 1907년 8월로 봐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국군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을 계승한 것은 제헌헌법에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것을 명시하였고, 초대 국방장관 이범석이 국군이 광복군을 계승함을 천명한 것으로 보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군은 의병과 독립군과 광복군의 법통을 계승한 자랑스러운 군대이며, (문맥으로 보아) 북한의 남침을 막아내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제 입장에서는 일본이 심어놓은 나쁜 편견인 대륙과 해양세력 충돌론이라든지, 월남전을 자유수호 전쟁으로만 본다든지, 마지막에 뜬금없이 김일성 우상화물 건립 운운하는 부록이 달린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군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근현대사의 정통성이 갑오농민운동으로 시작되는 민중계열에게 있든, 뉴라이트(뉴돌아이로 발음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개화파와 독립협회로 시작되는 쪽에 있든 양대 세력을 아울러 이어져 온 군맥1을 부인하는 것은 곧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 없는 일입니다.
이 글은 대한민국 국군의 군맥이 19세기 말 의병-독립군-광복군-국군으로 이어져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제국군이 해산된 1907년부터 광복군이 창설된 1940년까지의 역사를 단절된 것으로 보는 '국군단절론'이 민족사의 단절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이 시기의 33년사를 그 전후 시기와 연결된 시기로 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광복군 성립 보고서'를 들고 있습니다.
'광복군 성립 보고서'는 1940년에 광복군 총사령부가 발표한 보고서로, 광복군의 창립 시기를 일제가 대한제국군을 해산시켜 제1대대장 박승환이 권총자결하고, 이에 따라 정규군이 정미의병에 가담한 때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광복군의 창설일인 8월 4일이 박승환이 자결한 8월 1일과 같은 시기라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결국 광복군 성립 보고서에서 광복군이 창립 이전의 군사활동(의병, 독립군 활동)과 단절되지 않고, 이를 계승했음을 천명했습니다.
여기에 "의병이란 민군이다. 국가가 위급할 때 즉시 의로써 일어나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종군하여 싸우는 자 인 것이다."라고 하신 박은식 선생의 말씀이나, 황현과 같이 의병전쟁을 독립전쟁의 원류로 본 사람들의 예를 들어 의병이 단순히 충군사상이나 배일감정에서 비롯된 군대가 아니라 자발적인 국민군의 성격을 띠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병의 창설이 제 1의 창설이라고 보고, 독립군의 창설이 제 2의 창설, 광복군 창설이 제 3의 창설,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이 제 4의 창설이고, 이 시기에 끊어지지 않은 군맥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 시기를 1907년 8월로 봐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국군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을 계승한 것은 제헌헌법에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것을 명시하였고, 초대 국방장관 이범석이 국군이 광복군을 계승함을 천명한 것으로 보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군은 의병과 독립군과 광복군의 법통을 계승한 자랑스러운 군대이며, (문맥으로 보아) 북한의 남침을 막아내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제 입장에서는 일본이 심어놓은 나쁜 편견인 대륙과 해양세력 충돌론이라든지, 월남전을 자유수호 전쟁으로만 본다든지, 마지막에 뜬금없이 김일성 우상화물 건립 운운하는 부록이 달린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군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근현대사의 정통성이 갑오농민운동으로 시작되는 민중계열에게 있든, 뉴라이트(뉴돌아이로 발음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개화파와 독립협회로 시작되는 쪽에 있든 양대 세력을 아울러 이어져 온 군맥1을 부인하는 것은 곧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 없는 일입니다.
Footnote.
- 위에서 밝힌 것 같이, 대한민국의 군맥은 민중세력인 의병과 임정의 정규군이었던 광복군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Back]
"역사의 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역사선생 이명박(실시간 동영상 교재 완비, 실제 체험도 가능, 수강료는 놀랍게도 무료!?) (댓글 4개 / 트랙백 1개) 2008/06/06
- 올해가 어째서 건군 60주년이죠? (댓글 4개 / 트랙백 0개) 2008/10/06
- 대동여지도가 친일지도? (댓글 6개 / 트랙백 1개) 2007/12/07






어쨌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둘 다 자생하지 못하고 이식된 것들이죠)를 향유하는(독재시절에도 일단 무늬는 민주주의였으니까요...) 대한민국이 무지 자랑스럽고, 그 이상 정통성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고, 덤으로 사회 주도층의 조상의 잊고 싶은 행적도 있고 하니 그 이전의 역사와 단절된 대한민국사를 강조하는 것이죠... 그 부작용으로 민주주의를 전해준 미쿡에가 캄사캄사를 외치는 거고, 그 미국의 종교가 개신교다보니 뉴라이트=개신교도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