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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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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심남 이야기

2008/10/09 18:18 불멸의 사학도 씀.
분류 : 잡다한 일상의 조각
꼬릿말 : 그래도 마법사가 되는 것 만큼은 제발..., 내 이 일을 발설하는 후배녀석에게는 치도곤을 놓을 것이야, 사랑, 소심남, 연애, 이것이 인과응보란 말인가?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 한 소심한 아이가 살고 있었답니다. 정말로 소심해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어도 언제나 멀리서 지켜볼 뿐,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보지 못했답니다. 이런 일은 이 아이가 사랑에 눈을 뜬 뒤로 매년 계속되었답니다.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혼자만의 짝사랑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이 된 그 아이는 얼마 없는 용기를 그러모아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쪽지를 보냈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요? 중간 배송미스로 다른 여자아이에게 넘어갔는지, 중간에 남자아이들이 농간을 부렸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필이면 그 아이를 좋아한 여자아이에게 넘어갔고, 결과적으로 둘이 쪽지를 교환한 셈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두 아이는 반 친구들에게 떠밀려서 사귀게 되었답니다. 애초에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쪽지가 전달되어 원하는 대로 되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다못해 떠밀려서 사귀게 되었어도 그대로 커플로 지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자기 주제도 모르고 그 아이에게 냉대를 했답니다. 아무리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곤 하지만, 조금 너무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어쨌든 소심한 덕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그나마 좋았던 중학교 시절이 다 지나가버렸답니다. 유럽에 로마문명이 쇠퇴하고 중세의 암흑기가 찾아 오듯, 연애전선에 있어 암흑기나 다름없던 남고생활이 시작된 것이죠. 물론 붙임성 좋은 친구들은 7시 등교 11시 하교의 압박 속에서도 주말을 최대한 활용해서 여자친구를 사귀고 했지만, 소심한데다 그런 쪽으로 전혀 놀 줄 모르는 이 아이에게는(게다가 그나마 남녀가 유별하지 않았던 모임인 학원이나 교회조차 다니지 않았답니다.) 고교생활이란 남자와 어머니 이외의 생물과 친해질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었답니다.

   그렇게 여자들과 담 쌓아온 그 아이는 이제 법적으로나 뭐로 보나 어른이 되었지만, 대인관계, 특히 여자들과의 관계가 미숙한 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일까요? 한동안 누구에게 반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답니다. OT부터 신입생 환영회에 답사까지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데다가, 학회, 소모임, 동아리 어느 곳에도 활동한 적이 없으니 어련하실까요.

   하지만 이 변함없이 소심한 청년에게도 다시금 사랑이 찾아왔답니다. 상대는 평소에 같이 수업을 듣던 한 학번 위의 선배랍니다. 같이 따라간 모임의 술자리에서 술 한 잔에 얼굴이 빨개진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고 하는데, 그걸 이유라고 들고 있네요. 뭐, 어떤게 좋고, 어떻게 반했는지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니까 존중해줘야지 별 수 있나요. 그래도 풋, 지는 술 먹으면 죽는다고 의사가 경고까지 했다는데, 그런 걸로 반하는 게 좀 우습긴 하네요.

   어쨌든 한 눈에 반하게 된 그 청년은 한동안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이쪽 세계의 취미에서 손을 떼 보자고 하고, 평소엔 신경도 안 쓰고, 그동안 IT기기 사지르는 데 쏟아부은 돈의 1/100도 투자하지 않았던 외모라는 데에 자기 돈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뭐 그런다고 사람의 본질이 그리 쉽게 변하고, 단번에 뚱뚱한 호빗이 알렉스급 완소남이 되나요? 청년은 탈덕은 커녕 그간의 외도로 인해 자신과 대중문화와의 간극이 버블세븐과 지방 변두리의 땅값 만큼이나 심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주신 키는 무엇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닫고 , 또 이 세상엔 체중감량을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으며, 그 음모에 어머니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놀랄 뿐이었답니다.

   어쨌든 제딴엔 최대한 꾸며본다고 하고, 바꿔본다고 해서 그렇게 답사를 갔는데, 답사지에서 여러 문화재를 카메라 앵글에 담는다는 핑계를 대면서 몰래몰래 그 선배를 찍었답니다. 참 파렴치한 짓 아닌가요? 요즘 세상엔 초상권이란 게 꽤 존중받고 있다는 데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몰래몰래 찍은 사진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답니다. 아무래도 나온 지 오래된 쿨픽스 8700으로는 산속의 어둑어둑한 환경에서 , 그것도 급하게 찍어서 초점이나 노출이 적절하게 되기는 어려웠나보네요. 그래서 월드스타 Rain의 손에 들리면 사막의 폭풍 속에서도 열대우림 속에서도 작품사진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DSLR이 없는 것을 한탄했답니다. 뭐, 이것도 다 자업자득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딱 하나 좋았던 점이 있다면, 끈질기게 붙어다닌 덕분에 제대로 박힌 투샷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답니다. 그거 하나가지고 좋아하는 꼴을 보아하니, 역시 대한민국 대표 소심남이 맞네요1. 그리고 하나 더, 물어물어 찾아간 선배의 싸이에서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는데, '통통하고 귀여운 후배'라고 쓰여진 걸 보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답니다. 보통 '통통'은 '뚱뚱'의 순화어로 쓰인다는 걸 생각한 건지 못한 건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계속해서 싸이를 둘러보고 있더니 안 봤으면 좋았을 걸 보고 말았네요. 잘 아는 선배와 커플사이였다는 것을 말이죠. 그걸 보고 난 청년은 걱정스러웠답니다. 그 선배와 비교해서 더 나은점이란 게 과연 있기나 할까 하고 말이죠. 그런 글이 달렸던 시기가 2005년이었다는 점이 다소 위안이 되었지만, 여전히 둘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니 소심남 주제에 어떻게 고백할 용기가 나겠어요? 반하자 마자 같은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교수에게 허락도 받은 마당에 고백의 말도 못 꺼내보고 실연당해버리면 앞으로 그 대학원 잘도 다니겠네요. 이래저래 안쓰럽긴 하지만, 그러게 진작에 선후배하고 친하게 지냈어야죠. 그러게 누가 인간관계 담 쌓고 지내랬나요? 역시 언제봐도 한심한 화상이란 생각밖엔 안 든답니다. 그렇다고 그냥 버려두기엔 좀 불쌍해 보이네요. 지금 이러고 있는 와중에도 '마법사가 되기까지' 카운터는 1년이 채 남지 않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거든요. 전세계의 커플 여러분, 이녀석에게 힘을 주세요. 실연의 아픈 추억은 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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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1. 이녀석에 비하면, 평화주의자가 가진 유일한 무기인 자신의 매그넘을 앞세워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기갑부대의 행렬에 맞설 용기를 가진 US군(하는 짓은 반미인데, 이니셜은 친미파네요...)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네요...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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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엮인글 주소 >> http://bulmyeol.net/trackback/311
  1. 지오닉  2008/10/09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힘내세요.
    4년동안 연애상담에 위로까지 해주면서 찌질댄 소심남도 있습니다 ㅇ>-<

    너무 고민하거나 "난 왜?!"라고 하지 마시공
    꾸준히 자신을 가꿔보세요 애정을 가지고
    왕자병까진 가지 마시구요.
    뭐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특히나 연애쪽은 ㅠ_
    전 요즘 무념무상임둥

    여튼 화이팅입니다.
    연애는 키나 외모가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니까요.
    자신만의 매력을 찾아서 인기쟁이가 되길 바랍니다.
    • 불멸의 사학도  2008/10/10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힘은 내볼게요...ㅠ.ㅠ
  2. 하타  2008/10/10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초등학교 졸업하고 고2가 될대까지 동갑내기 여자라는 물건(?)과 이야기도 제대로 못해본 소심남 있습니다.
    (3학년 2학기나 되서 처음으로 제대로 한번 대화해봤습니다. ㅡㅡ;;)
    • 불멸의 사학도  2008/10/10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같이 힘내요...
      라고 하지만 저보다 훨씬 어리시니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공대'라는 한 단어가 앞으로 만만치 않다는 것을 표현한다고 할까요?
      그래도 학과 수업 말고도 많은 기회가 있으니까요... 동아리 활동이나 학과 외부 활동을 잘 이용하신다면 분명 좋은 일이 찾아올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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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사학도는 이렇게 말했다.

"이룰 수만 있다면 뭐라도 믿고 싶어요."

우리 슬픈 종부세를 구해주세요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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